박강문 코너 - 아,'아래아 한글'박강문 코너 - 아,'아래아 한글'

Posted at 2007. 1. 21. 10:33 | Posted in 한글 소식_정보_관련 글

서울신문 1998.6.18(금) 박강문 코너에 실렸던 글입니다.
글 쓴 시점을 보면 1998년입니다. 이때는 한컴이 어려워 한컴을 MS에 매각한다는 시점이었죠. 그에 대한 감흥을 쓴 기사입니다.

  나는 89년 세운상가 4층 러브리소프트라는 가게에서 ‘한글’을 샀다.개발자 이찬진씨한테 어디서 파느냐고 천리안 전자우편으로 물었더니 이곳을  일러 주었다.

  그 때 그는 남의 소유인 이 가게의 한켠에 작은 책상 하나를 놓고  5.25인치 디스켓 다섯 장에 든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한글’을 팔았다.그는  대학노트를 펴고 기다란 일련번호 다음에 구입자 주소 성명을 모나미 볼펜으로적은 뒤 1번 디스켓 레이블에 그 번호를 써 주었다.

  그와 말을 나눈 것은 이 때를 앞뒤로 하여 두어 번밖에 되지  않는다.그는 수줍음을 타는 편이었는데 겸손하고 성실한 젊은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그런 그가 뒷날 화려하게 날개를 펴고 글과컴퓨터라는 회사의 사장이 되어 한국의 빌 게이츠로 날아오를 줄은 그 때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외국에 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출국할 때쯤에 새 버전이  나올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그 해 여름 새 버전으로 바꿔 미국에 가서  잘 썼다.그의 성실함에 끌려 ‘프로그램의 이러이러한 점은 저러저러하게  고쳤으면 좋겠다’고 꽤 긴 편지를 서울에 보내기도 했다.

  미국서 잠시 함께 지내던 국어학자 서 아무개 교수도 나와 마찬가지로  ‘한글’사랑에 빠진 이였다.세종대왕 이후의 최대 업적이라고  극찬했다.‘한글’이야말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었다.이 것이 나옴으로써 컴퓨터에서 한글이 비로소 제대로 살아 빛을 뿜었다.이찬진 씨에게 훈장을 주어야 한다는 서 교수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한글’이 처음 나올 때부터,그 뒤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이제까지,10 년 동안 써 왔다.내 머리 속의 생각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 짜여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다.

  이찬진,그가 빛나는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리라는 것도 몰랐지만, 그가 자신의 분신이라 할 ‘한글’에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 같은 이보다야  그 자신이 몇 백 갑절 더할 것이다. 고민도 많았으리라. 그를 생각하면 죄책감, 허탈감이 밀려 온다.

  우리가 누린 만큼 그에게 제대로 보답했는가.우리 잇속만 챙기고 그의  고민을 외면하지 않았는가.사실 여러 번의 버전업이 있었지만,내가 정품을  구입했던 것은 두 번 아니면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컴퓨터를 사면 하드  디스크에 이미 설치된 경우가 있어 굳이 따로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배신감도 한편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그 길밖에 없었는가.자신이  만들기는 했지만,또 비록 그것이 돈벌이가 안된다지만,이제 국민적 자산이 된 ‘한글’을 버릴 수 있는가.자기 ‘아이’를 버리기로 하고 2,000만 달러를 빌 게이츠에게서 얻다니.

  소프트웨어 불법복제가 성행하고 정품이 팔리지 않는 풍토를 그가  원망하지만,  이름없는 청년을 오늘의 그로 자라게 한 밑거름은 초기에 싸지  않은 값을 치르고 정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뿌렸다. 초기의 겸손을 잊은 것이 오늘이 사태의 원인일 수도 있다.  이제,자꾸만 그가,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보이니 슬프다.무너지는‘한글’의 신화가 가슴 아프다.

<문화생활팀장·부국장급 pensan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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