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운동 펼치는 방송인 정재환한글사랑 운동 펼치는 방송인 정재환

Posted at 2008. 10. 20. 21:48 | Posted in 신문 기사


# 한글날을 일주일여 앞둔 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세종로 정부 종합청사 정문 앞. 한 40대 남성이 ‘동주민센터 이름 반대’란 제목의 판을 들고 시위를 시작한다. 지난해 9월부터 행정안전부가 전국 2133개 동사무소의 이름을 ‘동주민센터’로 바꾸기 시작하자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가 열 달 동안 거리에서 반대서명운동을 펼친 데 이어 7월부터 수요일마다 벌이고 있는 시위다. 시위 판엔 ‘행정기관 이름에 센터가 웬 말/ 카센터 심부름센터 회센터 동주민센터/ 대한민국은 센터공화국인가/ 대한민국 정부 이름은 아름다운 우리말로’란 구호가 씌어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오후 1시30분까지 벌인 이날 시위를 보며 일부 공무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부분은 무덤덤하거나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표정들이었다.

정재환씨가 5일 인사동에서 ‘미녀들의 수다’ 멤버인 도미니크(캐나다), 사유리(일본), 구잘(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인 미녀들과 함께 한글로 멋지음(디자인)한 ‘한글옷’을 선뵈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600여 벌이 동났다.

정재환씨가 5일 인사동에서 ‘미녀들의 수다’ 멤버인 도미니크(캐나다), 사유리(일본), 구잘(우즈베키스탄) 등 외국인 미녀들과 함께 한글로 멋지음(디자인)한 ‘한글옷’을 선뵈고 있다. 이날 행사에선 600여 벌이 동났다.


# 한글날인 9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훈민정음 반포 562돌을 맞아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한글주간’이 선포된 가운데 열린 기념식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번 주간이 한글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 가치를 한층 더 드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경축사를 했다.


“ …/한글은 무려 1만2000여 자의 소리 값을 가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이렇듯 훌륭한 우리의 한글이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는 한글의 참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어를 잘 하려면 모국어부터 잘해야 합니다/…”


한글날은 일제 때 만들어졌다. 나라를 다시 찾으려면 민족의 얼인 한글만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에서였다. 그런데 한글날 제정 여든 두 돌이 되는 이 마당에 벌어지고 있는 이 두 장면-.


10여 년째 한글사랑운동을 해오고 있는 개그맨 출신 방송인 정재환(47·한글문화연대 부대표)씨는 과연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까. 앞으론 한글 사랑을 외치며 뒷전으론 ‘한글의 굴욕’을 부추기는 정부?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쓴웃음만 짓는다.


“덮어놓고 정부 탓만 하자는 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게 문제죠. 다른 일도 그렇지만 정부가 조금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도 국민한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한글 사랑의 경우 특히 정부의 솔선수범이 중요한 거죠. ‘동주민센터’만 해도 그래요. 굳이 행정기관 이름에 영어를 쓸 필요가 있나요? 행정안전부는 자꾸 ‘센터’가 외래어이기 때문에 국어의 일부로 볼 수 있다며 별 문제가 없다고 우기는데 정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정씨는 외래어와 외국어의 구분이 모호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같이 고집하는 건 또 다른 사대주의라고 주장한다. 예전에 멀쩡한 한글을 놔두고도 토씨 말고는 죄다 한자나 일본어를 사용했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얘기다. 정씨는 무엇보다도 마치 한글을 촌스럽게 여기는 행태에 분개한다. 그래서 7월 초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맨 먼저 한 것도 그다. 

‘되지도 않는’ 영어 간판이 눈에 띄자 정재환씨가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꺼내들고 있다. [최승식 기자]

‘되지도 않는’ 영어 간판이 눈에 띄자 정재환씨가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꺼내들고 있다. [최승식 기자]



“지자체들을 봅시다. ‘Hi Seoul’ ‘Dynamic BUSAN ’ ‘It’s Daejeon’ ‘Fly Incheon’ ‘Pride GyeongBuk’ ‘Tour Partner Gwangju’ ‘Ulsan for You’….아예 한글이 없어요. 이뿐만 아니에요. 정책이랍시고 내놓은 ‘뉴스타트’니 ‘에이블 2010’이니 하는 것들은 다 뭡니까. 이게 어디 대한민국입니까?”


‘금연’하면 될 것을 ‘NO SMOKING’도 부족해 ‘SAY NO’가 추가되고, 농민이 주인(?)인 ‘농협’이 어느 틈에 ‘NH’로 바뀌고, 서울메트로엔 ‘비상구’는 없고 ‘EXIT’만 있고, 그러다 보니 ‘아기가 타고 있어요’대신 ‘Childs in Car’가 등장하고…. 정씨가 주워섬기는 ‘정부의 시범에 따른 효과 사례’는 끝이 없다. 그가 공직자윤리강령처럼 ‘공직자언어강령’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신문도 마찬가지”란 말엔 죄인이 된 기분이다.


“영어를 전혀 쓰지 말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필요하면 쓰되 우리가 중심이 되자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주객이 바뀌어 한글이 안방을 내준 꼴이에요. 세계화한답시고 정부부터 고운 우리말을 써도 될 곳에 영어를 쓰다 보니 유치원생 공책 표지에 어린이와 무관한 영어가 도안으로 들어가고, 식당마다 ‘물은 셀프’가 되고, 김밥도 ‘테이크아웃’되는 세상이 된 겁니다. 바로 이 같은 ‘부스러기 영어’를 쓰지 말자는 겁니다.”


정씨는 한글사랑운동을 해 오면서 한 가지 병을 얻었다. 눈이나 귀에 거슬리는 표현이 들어오면 고쳐주고 싶어 안달을 하는 증세다. 어디를 가나 늘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단 말로 하고, 안 되면 한글문화연대 명의로 공문을 보내 고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인터뷰 도중 물을 마시다 종이컵에 ‘Have a Nice Day!’라고 쓰인 걸 보곤 대번에 “신문사에서 이런 것부터 고쳐라”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다. 하여튼 그의 한글 사랑은 정말 남다르다. 한글을 사랑하는데도 연예인의 ‘끼’가 필요한 것인가?


정씨는 80년부터 방송국을 드나들었다. ‘이수일과 심순애’로 초등학교 5학년 오락시간을 휘어잡은 것을 시작으로 중·고교 시절 ‘오락대장’으로 군림했던 그는 친구와 함께 ‘동시 상영’이란 개그 듀엣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훤칠한 키(1m82㎝)에 잘생긴 얼굴하며, 순발력 있는 유머감각으로 방송 3사의 TV·라디오를 누볐다. 정치 비판 시사코미디의 원조 격인 서울방송의 ‘코미디 전망대’에서 모의국회 의장을 맡아 사석에서도 ‘의장님’으로 통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DJ·MC로도 이름을 날렸다. 그가 한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코미디나 개그는 대본을 쓰고 녹화를 하면서 도중에 잘못된 표현들을 걸러낼 수 있지만 DJ·MC는 특성상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91년 말인가, SBS가 개국한 지 얼마 안 돼 ‘기쁜 우리 젊은 날’이란 청소년 대상의 심야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어요. 하루는 ‘표’씨 성을 가진 여학생이 출연했는데 제가 소개하면서 ‘펴’씨라고 발음하니까 그 학생이 자꾸 ‘표’라고 하는 거예요. 까닭을 모른 채 귀가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제야 제 발음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미안하던지….”


다음 날 즉시 서점을 찾아 평소 틀리기 쉬운 말들을 모아 놓은 책들을 사서 읽어댔고, 국어사전은 아예 끼고 살았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국어에 소홀했는지, 방송인의 언어가 왜 중요한지 등을 새삼 느꼈다. 이러기를 3, 4 년쯤 지나자 웬만한 것은 뭐가 왜 잘못된 건지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의 수준이 됐다. 그러자 이번엔 남들도 고쳐주고 싶었다. 후배와 친구들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해서인지 잘 따라주는 게 고마웠다. 하지만 선배나 그 밖의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쓰기로 맘먹고 99년 내놓은 것이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이었다. 이 책은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서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는 인기 광고와 맞물린 데다 개그맨이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방송인들의 호응도 커 이후 방송가에서 ‘짜장면’이 사라진 것도 이 책 덕분이었다. 이 공로로 그는 그해 KBS가 제정한 ‘바른 언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은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한글사랑운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책을 본 한림대 김영명(정치학) 교수가 한글문화운동을 함께 하자고 제의해 왔기 때문. 이들은 이듬해 2월 연세대에서 학계·방송계 인사 등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글문화연대를 발족했고, 정씨는 부대표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한글문화연대의 활동 중심에는 늘 그가 있는 이유다.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를 기획하고, 매년 두 차례 운영하는 초등학교 교사 대상 ‘한글맞춤법교실’ 행사 등엔 직접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일상에서 한글 사랑 실천을 유도하기 위해 ‘물은 스스로’ 등 스티커를 만들어 나눠주는 등의 행사엔 빠짐이 없다. 이달 5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한글 옷이 날개’ 패션쇼 때는 KBS ‘미녀들의 수다’ 프로의 멤버인 여성 외국인들과 함께 한글 디자인 셔츠를 입고 모델을 하기도 했다.


“회원의 한 사람으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모든 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회원들만큼만 한글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현재 성균관대 박사(한국사)과정에 있는 정씨가 2000년 늦깎이로 대학 공부를 시작한 것도 따지고 보면 한글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한글사랑운동을 하면서 보다 깊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사를 전공했지만 석사 논문이 ‘이승만 정권 시기 한글 간소화 파동연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3년 만에 인문학부 수석 졸업을 할 정도로 공부에 매달리면서도 한글 관련 책을 세 권 더 냈다.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2000년),『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2003년),『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2005년) 등. 이를 위해 그는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어 버렸다.


그는 방송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딴 뒤에도 배운 것을 접목시켜 방송을 해보는 게 바람이다. 하지만 그는 방송 일을 못하더라도 한글사랑운동은 죽을 때까지 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도, 미래도 한글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가 왜 “한글이 목숨”이라던 외솔 선생의 가르침을 종교처럼 떠받드는지 알 것 같다.


이만훈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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