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한글 서체의 계보인물로 보는 한글 서체의 계보

Posted at 2008. 10. 7. 22:13 | Posted in 한글 관련 자료

이원모(? - ?)

이원모는 최초로 한자 명조체를 한글에 적용하여 ‘동아일보 이원모체’를 디자인하였다. 1928년에 <동아일보> 활자체 공모에서 당선한 이 서체의 자모조각은 일본의 이와다자모 회사의 ‘바바(馬場)’라는 자모 조각가에 의해 손으로 조각되었다. 이원모체는 한자 명조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 만든 한글 활자체로서 신문전용으로 세로쓰기에 맞도록 설계되어 1933년 4월 1일자 <동아일보>의 제목과 본문에 처음 등장한 이후 1950년 6.25전쟁까지 사용되었다. 전쟁 후 북한의 <로동신문>은 이원모체를 바탕으로 활자를 제작하였으며, 장봉선도 이를 근거로 서체를 만들었다. 최정호체로 연결되는 한글 명조 활자체 계보의 시작이 바로 이원모체였다.

박경서(? - 1965)
박경서는 궁체꼴 한글 활자를 다듬어 세로짜기 명조활자로 완성하였다. 그는 오늘날 한글 활자꼴의 바탕을 마련하였고 한글의 네모틀 글자의 세로짜기에 글자의 기둥맞추기 원칙을 확립하였다. 1936년 이후 제작된 박경서 4호, 5호 활자는 당시는 물론 광복 이후 국정교과서를 비롯해 많은 인쇄 매체에 사용되었다. 특히 신문에 사용된 그의 활자체는 신문의 짜임새를 한결 매끄럽게 한 서체 디자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1975년경 벤톤조각기로 만든 최정호 활자가 나타날 때까지 박경서가 개발한 자형은 널리 쓰였으며 현재까지도 북한과 연변의 글자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박경서체를 확대하여 최정순과 최정호가 활판용 원도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최정순(1917-)
최정순은 최정호와 함께 한글 서체 개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서체디자이너이다. 최정호가 출판 활자에 공헌한 바가 크다면 최정순은 주로 신문 활자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그는 교과서 및 신문서체를 중심으로 조형성뿐 아니라 가독성에 무게를 두어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 쉬운 본문용 서체를 개발하였다. 1954년 문교부가 주관한 교과서용 활자체 개량 계획에 따라 일본에서 활자서체 설계법과 자모조각 기계 조작법을 연수받은 그는 국산 활자기를 생산하여 한글교과서 서체를 개발하였고, 1965년부터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부산일보> 등 다수의 신문서체를 제작하였다. 또한 1990년대에 본문 바탕체와 본문 돋움체, 제목 돋움체, 옛한글 바탕체를 연이어 개발하였다. 50년동안 서체 개발 31만여자, 신문사 서체를 수정하고 감수한 것이 90여만자, 신문사 디스플레이용 비트맵에 이르러 규모와 수적인 면에서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공병우(1906-1995)
공병우는 일명 탈네모틀글자꼴의 모태인 빨래줄 글씨를 만든 타자기 발명가이다. 그는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의 특수성으로 인해 글씨꼴이 기계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인물이었다. 한글의 기계화가 로마자의 기계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기존의 네모틀에 맞추어 일일이 도안을 그려 사진식자기를 사용한 인쇄체는 공간배분이 불합리할 뿐 아니라 구성 내용이 복잡하여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대안으로 세벌체를 내놓았다. 그의 세벌체 글자꼴인 빨래줄 글씨는 1950년대 자신이 발명한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통해 선보였다. 이후 한글타자기와 한글 워드프로세서에 실제로 사용되었고 일부 신문과 잡지에서 제목체로 사용하였다. 공병우의 빨래줄 글씨꼴은 이후 젊은 연구가들이 현대감각에 맞게 새로 디자인한 샘물체와 안상수체와 같은 탈네모꼴글자꼴의 뿌리가 되었다.

이상철(1944-)
우리나라 최초로 그리드 시스템을 편집디자인에 적용한 아트 디렉터인 이상철은 세벌식 서체인 샘물체를 개발한 서체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한국 브리태니커 출판사와 <뿌리깊은 나무>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획기적인 편집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이고 과감한 사진 트리밍과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특히 잡지 <샘이 깊은 물>의 제호를 위해 디자인한 ‘샘이 깊은 물체’(일명 샘물체)를 개발하여 활자의 꼴, 크기, 자간행간, 글줄길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판 개념을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제작하였다. 당시 잡지계의 현실에서 보자면 이는 획기적인 것으로 한때 편집디자인 분야에서 이른바 이상철 스타일이 대유행할 정도로 그가 미친 영향력은 컸다.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로 인해 우리 나라 편집디자인과 잡지디자인의 역사가 새로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헌을 한 그는 이후 이가솜씨(현재는 디자인 이가)라는 디자인 컨설팅회사를 설리하여 활동하고 있다.

김진평(1949-1996)
김진평은 서체 디자이너보다는 이론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리콤의 전신인 합동통신사에 있으면서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판 창간을 맡은 이후 그는 주로 로고 타입이나 북자켓을 위주로 한글 조형 작업을 하였다. 그가 실무경험에서 목격한 한글 글자꼴에 대한 이론 부재에 대해 여러 문제점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였다. 1990년에 <한글 활자체 변천의 사적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활자체 연구를 시작하였고 이후 한글 폰트개발, 옛활자 복원문제를 가지고 한성주보 활자체와 김두봉 활자체 연구등의 성과를 남겼다. 또한 1998년에 서울여대 대학원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타이포그래피의 전공과정을 개설하였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정립과 한글 활자체의 조형성에 대한 김진평의 연구는 타계 후 후진들에 의해 재조명되었다. 저서로는 미진사에서 펴낸 <한글의 글자 표현>이 있으며 <서울여대 논문집>에 기고한 ‘한글 타입페이스의 글자폭에 대한 연구’, ‘한글 활자체의 조합형 설게 방법에 관한 연구’, ‘한성주보 활자꼴에 대한 연구’ 등의 소고를 남겼다. 추모논문집으로 <한글조형연구>가 있다.

안상수(1952-)
일명 안상수체를 개발한 안상수는 기존의 양식과는 차별화된 서체와 디자인으로 1980년대 한글 서체디자인과 편집디자인 분야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안상수는 한글꼴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체계적인 연구로 안상수체를 비롯하여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 등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였다. 그의 한글 서체에 대한 관심은 글꼴 개발과 더불어 대중교양지인 <마당>과 <멋>의 편집작업으로 이어졌고 대중잡지의 아트디렉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공헌을 하였다. 계간 <보고서/보고서>의 발행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전시 활동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와 전위적 편집방식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그는 창작 대상으로서 한글이 지닌 조형성의 지평을 확장하였다. 특히 1983년에 쓴 <한글 타이포그라피의 가독성에 대한 연구>는 가독성을 중심으로 한글꼴을 다룬 최초의 연구논문으로 많은 후학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윤영기(1959-)
개성이 강한 헤드라인 서체에서 두곽을 나타낸 윤영기는 다양한 한글 폰트를 개발하여 디자이너들에게 한글 서체의 선택의 폭을 넓힌 서체디자이너이다. 1989년에 한글서체 개발을 중심 사업으로 한 ‘윤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여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한글 서체를 상품화하는데 성공하였다.  1990년에 제작한 그의 대표작인 윤체는 발표된 이후 지금가지도 구준히 애용되고 있다. 이후 참명조체, 아이리스체, 회상체, 햇살체 등 수십종에 이르는 다영한 서체를 개발하였다. 특히 여름체와 가을체, 봄체, 겨울체의 경우 우리나라 서체 중 취약 분야인 필기체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양한 서체를 가지고 있는 일본어나 영어에 비해 한글이 글자 선택과 사용의 폭이 좁았던 당시의 현실에 윤영기는 다양한 표정을 지닌 한글꼴을 만들어냈다. 서체 개발 외에도 1996년에 우리나라 서체문화를 올바로 보급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정글>을 창간하였고 ‘윤디자인 한글서체 공모전’을 실시하여 젊은 디자이너들의 한글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활동을 병행했다.


출처 : 월간 DESIGN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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