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1.5 Sample 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한글 1.5 Sample 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Posted at 2007. 1. 13. 19:38 | Posted in 한글 잡답

지난 번 도스용 한글 1.5를 아시나요? 라는 글을 올렸다.  그렇다면 1.5의 샘플 파일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아무런 효과 없이 간단한 텍스트 문서가 들어 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의 중허리 장산곶은 그 텃세가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대륙의 묏뿌리가 바다를 향해 미친듯이 냅다 뻗히다가 갑자기 허리가 잘리니, 거기서부터 깊은 수렁이 생겨 물살이 숨가쁘게 소용돌이친다.

따라서 망망대해와 접해 있는 중국대륙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기압골의 변화는 곧바로 장산곶 마루턱에 와 닿아 그곳의 세찬 물살과 함께 풍랑이 조용히 잦을 날이 드물다.
이리하여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깔이 드세고 풀뿌리 나무잎까지가 약한 놈은 견뎌 배기질 못하고 거칠고 우람한 낙낙장송만이 살아남아 드높이 우거졌다.

이 우거진 솔밭에는 유명한 전설이 많았다.  장산곶 사람들이 원래가 성깔이 드세니 갖가지 민란을 일으켰다가 관군에 쫓기면 이 숲속에 와 숨는데 그럴라치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고 혹 만용스러운 관군이 그 숲속에 한 발길이라도 들여 놓을라치면 금방 칼끝에 녹이 슬어 백발백중 민란의 주역들에게 당했다는 전설이다.

왜 써 보지도 않은 칼끝에 녹이 슬까.  바로 그 숲속은 무서운 날짐승 매의 보금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놈의 매는 어찌나 사나운지 그 사나운 정기 때문에 매가 사는 곳에 침입한 못되먹은 관군의 칼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놈들이 갖고 다니는 쇠붙이는 모두 녹이 슬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민란을 일으킨 주역들의 정기는 이 사나운 매의 정기와 꼭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나운 매 가운데서도 장수매(우두머리)가 있는 법이었다.  이를테면 장산곶 매란 이 장수매를 이른다.

이 장수매는 장산곶 바닷가, 몇억년을 두고 요동치는 물결에 시달려 깎아지른 듯 높이 선 벼랑, 그 바람찬 절벽에 솔밭이 우거진 어둠침침한 곳에 노상 둥지만 틀고 앉았는 것이다.  천리밖에 개미새끼 한마리의 움직임도 포착한다는 유난히 빛나는 눈매, 밤송이처럼 뻐그러진 앞가슴, 사나운 발톱, 지칠 줄 모르는 칼날같은 날개, 여기에 슬기와 용맹을 곁들인 장수매는 이렇게 이상한 성품을 가진 놈이었다.
좀처럼 숲속에서 나오는 법이 없는 놈이었다.

그러나 한번 날개를 쳐 하늘에 떴다고 하면 천하의 날짐승, 들짐승들이 겁에 질려 맥을 못추고 그 사나운 정기가 온누리에 서려 밭을 갈던 찌릉소(사람 잘 받는 소)가 코에 땀을 흘리고, 물동이를 이고 가던 부정한 아낙이 선 채로 굳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놈은 꿩이다, 산토끼다, 주변에 널려있는 자질구레한 먹이는 손을 대는 적이 없는 성질이었다.  그것들은 제놈이 거느리는 여타 매에게 주고 자기는 일년에 꼭 두번만 사냥에 나서는데 그 사냥터는 조선반도가 아니라 멀리 서해바다를 넘어 중국 본토로 또 하나는 만주의 넓은 들을 넘어 사철 눈이 내리는 곳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지금의 시베리아였다.  중국 본토는 이른 겨울, 그곳의 짐승들이 낟알을 먹고 잔뜩 살이 올랐을 그 무렵이요, 시베리아는 한반도에서는 초여름, 그곳 날짐승들이 새싹을 뜯어먹어 기름져 날뛸 그 무렵이었다.

담아, 매의 이야기가 이와같이 과장된 것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염원인 넓은 천지에 대한 그리움을 반영한 듯하며 주변에 있는 먹이엔 손을 안 댄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실은 당시의 민중이 넓은 땅에 눈돌릴 줄은 모르고 한정된 반도적 조건에서 착취만 하는 지배계층의 옹졸함에 대한 반발의 표시요, 매가 출중한 관용의 우두머리로 부각되고 있는 점은 곧 위대한 민중적 지도자를 갈망하는 염원의 상징적 표시가 아닌가 여겨진다.

좌우간 이렇게 행동반경이 전 아시아적인 이 장수매는 그곳에서 일어난 민란과 연결되면서 끝내는 한쪽 날개가 삼십자 양쪽 날개를 합해 육십자가 넘는 대륙에서 날아온 침입자 수리를 물리친다는 장엄한 전설적인 이야기다. <중략>

그러나 여기서 소개하는 줄거리는 매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서도 맨 앞부분에 속한다.
어떤 대목인가 하면, 이 장수매가 수륙만리 넓은 땅으로 사냥을 떠나는 전날 밤 그 놈의 입버릇인 부리질이다.  즉 이 장수매는 사냥을 떠나는 전날 밤 그의 사나운 주둥이로 그 놈이 자리했던 둥지와 생활 주변을 밤새도록  딱, 딱  하고 송두리째 까 팽개친다는 것이었다.

왜 그 짓이었을까.  네 증조할머니가 설명해 준 바에 의하면 이러했다.

장수매가 한번 사냥을 나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건 혼신의 싸움터에 나서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온 정성을 싸움에만 두어야지 그까짓 집터에 집착을 두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전 백승을 확신하되 설혹 한번 지는 날이면 매의 서식처가 적에게 발각될지 모를 일이요, 그렇게 되면 어느 때든지 장산곶 매의 최후 보루가 위태로워질 것이 두려워 자기 둥지를 남김없이 부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부리질은 큰 적과 싸우는 마지막 입질 연습이요, 그 부리질을 통해 자기의 정신적 상황을 점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만약 여의치 않으면 장수매는 갑자기 부리질을 거두어 버리고 사냥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놀라는 것은 매가 아니라 그곳 장산곶 사람들이었다.

조선팔도 사람들은 새의 울음소리에 관한 전설을 많이 믿어 왔다.

아침 까치가 올면 반가운 손을 맞는다 하고, 소쩍새가 솟적다, 솟적다...... 하면 풍년이, 그리고 솟뗑 솟뗑...... 하면 흉년이 든다는 투로......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장수매의 부리질을 더욱 좋아했다.
왜냐하면 부리질로 밤을 지새운 날이라야 장수매는 사냥을 떠났고 그것은 마치 민중이 도약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날 장수매가 사냥을 떠나면 병약한 자는 병이 낫고 장가 못간 이는 장가를 들고 또 주인놈한테 억울함을 당한 머슴놈들이 그날 아침에 난을 일으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전설이었다.
이래서 장산곶 사람들은 이 장수매의 부리질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멀리 사냥에 떠나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이른 새벽 장산곶 마루에 봉화를 올리고 덩달아 춤을 추면서 기뻐하였다.  이른바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하는 유명한 우리 노래는 이땅의 민중의 신화가 변천해 오고 있는 전설적인 노래에 속한다.

그러나 이 장수매가 부리질을 하다가 말면, 거꾸로 하늘의 재앙이 있지 않으면 지배계층의 가렴주구와 외적들의 침입이 있다고 믿어 민심을 산란케 하기 때문에 장산곶 사람들은 이 부리질이 있는 밤이면 하나같이 격한 감정으로 밤을 지샜다고 한다.

딱, 딱, 하는 그 소리에 맞추어 자기를 부시면서 말이다.

담아, 너는 이 옛이야기에서 무엇을 깨닫느냐, 오늘 네가 쓰고자 하는 시가 이 장수매의 부리질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느냐, 종을 치고 비에 젖는 아니들이 아니라, 자기 둥지를 깨서 삶의 전의를 새롭게 다지고 그 다지는 소리로 하여 잠든 사람, 병든 사람을 일으키는 부리질 말이다.
이때 자기둥지란 지금까지의 오염의 역사다.  제국주의 침략주의다.  그 앞잡이들의 문화요, 그것에 오염된 우리들의 문화경험이다.  아니 역사의 합리적인 발전지향에 대립되는 쩨쩨한 소시민 의식이요, 개인의 명예와 욕심이다.  따라서 민족의 자주통일에 대립되는 일체의 분단적 또는 보수적 가치관이다.

- 백기완 선생님 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중에서 -

//